주류경제학 이론이 현실성을 가지려면 이자율 결정이론이 코메디가 아니어야 하며 또한 이자율이 현실경제, 특히 실물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강력하여야 한다. 이 중에서 후자가 더욱 중요하다. 애당초부터 이자율이 실물시장에 영향력이 없다면 이자율 결정이론은 관념적 유희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이자율은 자산시장에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 단 0.1%의 차익이 발생하더라도 일순간에 전세계의 펀드매니저와 데이트레이더들에 의하여 조단위의 재정거래가 발생한다. 하지만 그 와중에 미선씨가 받는 월급은 한푼도 오르지 않고 달팽이산책님의 매장 경기 역시 어제와 다를 바 없다. 실물시장은 retelf 같은 사기꾼 사업가가 사업을 시작해서 인테리어 공사를 하고 직원을 고용하게 되면 그때서야 경기가 진작되는 것이다. 비록 retelf는 망하겠지만 제2의 제3의 retelf가 그 뒤를 받쳐주고 있으므로 걱정할 필요는 없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retelf의 이자율에 대한 반응이다. 경제학에서는 이를 투자의 이자율 탄력성이라 부른다.
사업은 이자율의 함수가 아니라 성공과 실패의 함수이다. 이 점에서 펀드매니저나 데이트레이더와는 그 성격이 판이하게 다르다. 만약 retelf가 워렌 버핏과 같은 펀드매니저였다면 하루 온종일 눈이 시뻘개져서 컴퓨터 모니터만 바라다보게 된다. 이자율이 조금이라도 상승할 것 같으면 주식으로부터 시작해서 선물, 옵션, 외환 등의 보유 포지션을 그 즉시 변동시킨다. 하지만 retelf는 웨렌 버핏과 같은 인간 폐인이 아니다. 자랑스런 사업가다. 그 결과가 사기가 되었던 말던.
retelf가 호주머니 속의 투자금을 꺼낼까 말까를 결정하는 기준(솔직히 말하자면 남들의 호주머니를 털어서 그 돈 가지고 투자를 해볼까를 결정하는 기준)은 사업의 성공가능성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횡재가능성'이다. 사업은 기본적으로 모 아니면 도의 속성을 가진다. 그래서 아무리 이자율이 높아도 경기가 좋으면 그 이상의 수익이 발생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가진 재산을 되는대로 저당 잡혀 돈을 빌려서 사업 내지 장사를 개시한다. 반면 아무리 제로 이자율 내지 마이너스 이자율이라 하더라도 경기가 개판이면 사람들은 모두가 복지부동이다. 마이너스 이자율이라 해도 투자를 해서 이미 인테리어로 바뀌고 임금으로 나가 버린 돈은 다시 회수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대신 자산시장에서는 난리가 난다. 돈을 - 매장 인테리어로 바꾸지 않고 - 그대로 안전하게 통장에 넣어두고 있기만 해도 돈이 벌리기 때문이다. 이 경우 자신이 소유한 담보의 최대한도까지 대출을 일으키게 된다.
따라서 경기가 바닥인 상황에서는 이자율을 낮춘다고 해도 실물시장 투자는 여전히 꽁꽁 얼어붙은 상태가 되어 있고 대신 워렌 버핏과 같은 폐인들 잔칫상만 차려 주는 격이 된다. 반면 경기가 호황인 상황에서 이자율을 인상하면 나름 과열을 진정시킬 수 있을 것도 같지만 본래 사업이라는 것 나아가 장사마저도 그 수익률은 언제나 모 아니면 도이기 때문에 그 알량한 이자 몇 푼은 투자의사 결정에 별반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더 많이 벌리는 이상 이자율 3~4%는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호황이던 불황이던 이자율은 실물경제를 운영하는 정책수단으로서는 거의 실효가 없게 되는 것이다.
그래도 이자율이 실물경제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는 생각을 하는 주류경제학자들이 상당수 있다. 일반적으로 볼 때 신자유주의가 그런 입장이다. 그들은 이자율을 인상하면 IS가 어쩌고 LM이 저쩌고 거기에 BP가 그렇고 저렇고 하면서 미적분으로 친다면 15차 방정식을 굴린다. 시뻘겋게 달아오른 컴퓨터 CPU가 걱정스러울 정도이다. 물론 그 결과가 실물시장에 영향을 줄 때가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것은 미적분 15차 럭비공이 튕긴 결과에 지나지 않는다.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과정을 거쳐 어떤 결과가 나타나긴 하는데 그것이 본래의 이자율 인하 의도와 맞아 떨어지면 소위 '적중'을 한 것이 된다. 이처럼 주류경제학자들은 이미 점쟁이만도 못한 인간들이 되어 버렸던 것이다. 그들의 경제 예측은 항상 틀리며 혹시 맞는 경우가 있더라도 그것은 소 뒷걸음질 치다가 쥐잡는 경우일 뿐이다.
자산시장이 실물시장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다. 자산시장에서 거품을 발생시키면 그 거품이 실물시장으로 흘러 넘치게 된다.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거나 주식시장이 활황을 띠게 되면 그로 인하여 순식간에 재산이 2배가 된 사람들, 아니면 빈털터리였다가 떼돈을 번 사람들이 돈을 물쓰듯 하게 되는 현상이 발생하게 된다. 소위 부동산 졸부나 벤처 황제라는 사람들이 그런 인간들인데 그 대표적인 인물 한 사람을 들라면 예를 들어 retelf가 있겠다. 호주머니에 돈이 흘러 넘치다 보니 세상의 재미난 거리는 입맛대로 다 해본다. 그러자니 사무실을 내고 일년에 외국을 50번 다녀오고 그 와중에 여자관계만 빼고는 온갖 로맨스를 즐기면서 돈을 흥청망청 쓴다. 그 돈은 자산시장이 아닌 실물시장으로 흘러 들어가는 돈이다. 이처럼 자산시장의 거품은 일정수준 실물시장의 경기를 활성화시키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이러한 자산시장의 전반적인 부양은 인위적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적어도 IT와 같은 새로운 경제의 영역이 부상하게 되거나 아니면 오랜 동안의 실물시장의 성장이 부동산의 한계생산력에 반영되는 시점에 있어서만 가능할 뿐이다. 이에 비한다면 주류경제학자들이 늘상 제시하는 정책은 그와 같은 토대의 실질적인 뒷받침이 없는 상태에서의 이자율 조작일 뿐이다. 따라서 단순한 포지션 변경에 그칠 뿐이다. 거품은 발생하지 않고 발생하더라도 자산시장 내에서의 제로섬 게임으로 끝난다. 아니면 정말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결과가 발생하기도 하는데 한국의 외환위기나 그 연장선인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와 같은 것이 그것이다. 루비니가 그것을 예견하고 적중을 시켰다고 하는데 그것은 실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 운이 좋았을 뿐이다.
이 세상의 무수한 점쟁이들 중 하나 정도는 맞는 말을 하는 점쟁이가 있다. 그렇다고 그 점쟁이가 정말 유능한 점쟁이라고 할 수는 없다. 여러 번 계속해서 맞추어야만 그 유능함을 인정 받을 수 있다.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 그리고 한국의 외환위기 사태와 같은 것은 본래 경제예측의 영역을 넘어서는 것이며 예를 들어 IMF는 김영삼 대통령이 외환위기 상황을 6개월만 빨리 인식하였더라도 발생하지 않았을 사태였다. 그렇다면 외환위기가 발생할 것인가 여부를 좌지우지 하는 것은 김영삼 대통령이 6개월 이전에 그 위기를 인식할 것인가 아닌가가 가장 중요한 포인트가 된다. 그리하여 3개월이나 많아도 6개월 이전에 예측을 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3년 전부터 이를 예견할 수는 없다. 루비니 역시 서브프라임모기지와 같은 사태를 6개월이 아닌 3년 전에 예견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는 무수한 점쟁이 중 운 좋은 한사람이었을 뿐이다.
지금의 주류경제학 이론 체계는 미적분 15차 럭비공 방정식 이론 체계이다. 그것이 럭비공이 된 근본이유는 실물시장에 거의 영향력이 없는 이자율을 경제 운영의 가장 기본적인 정책수단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물론 돈(국가부채)를 찍어내서 이를 실물시장에 뿌리면 경기가 부양된다는 것은 다들 알고 있다. 하지만 그 부작용, 즉 천문학적인 국가부채와 재정절벽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도 역시 알고들 있다. 그래서 그러한 부작용이 없는 이자율 손가락질로 어떻게 해 보려고 하지만 이자율은 남자로 치면 이미 고자가 된 그것일 뿐이다. 그래서 결국은 어쩔 수 없이 국가부채라는 비아그라를 다시 복용해서 일순간만이나마 경제를 발딱 세우는 수 밖에 없게 된다.
이처럼 이자율은 이미 고자이기 때문에 그것이 어떻게 형성되는 것인가라는 문제 즉 고자이자율 결정이론이 코메디가 되었던 뮤지컬이 되었던 그것은 현실적으로는 실익이 없는 연구일 뿐이다. 그래서 주류경제학의 가장 핵심부에 위치하고 있는 화폐수요함수가 교과서에서 안개처럼 뿌옇게 설명되고 있다 하더라도 학생들은 저게 뭔 소린가 하면서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게 되는 것이다. 당신이 주류경제학 교과서의 화폐수요이론 부분을 읽으면서 그 이해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고 탄식할 필요는 없다. 당신은 정상이다. 본래 화폐수요이론은 이해할 수 없도록 쓰여졌기 때문이다. 모든 경제학 교수들이 그 부분을 쓸 때에는 저 자신도 무슨 말인지 모르고 베껴다 쓴다. 그래서 이해가 안되는 것이다. 거시경제학 교과서를 쓴 경제학 교수들은 그 모두가 retelf를 능가하는 사기꾼들이다.